원어분석 · 마가복음 1:1–3

Ἀρχὴ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

먼저 구조가 보이고, 낱말을 누르면 그 낱말이 열리고, 거기서 문법과 사본으로 더 들어갑니다. 색은 문장에서의 역할입니다.

1:1상자 안에 상자 인용 구조
검토 전 초안

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.

번역 노트 3 · 미결 2

Ἰησοῦ Χριστοῦ아직 정하지 않았다. ‘예수 그리스도의 복음’ — 예수가 전한 복음인가, 예수에 관한 복음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좋은 소식 ·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 ·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

εὐαγγέλιον아직 정하지 않았다. ‘복음’인가 ‘좋은 소식’인가 복음 · 좋은 소식 · 선포 · 알림

[υἱοῦ θεοῦ] — “본문에서 빼고 이문 카드로만” 를 골랐다. 저본은 SBLGNT 이고 화면 본문은 저본대로 간다. 갈림길 카드에서 다룬다.

동사가 없습니다. ‘~의’가 이어지며 안으로 파고듭니다. 바깥에서 안으로 읽으면 헬라어 순서, 안에서 바깥으로 읽으면 한국어 순서입니다.

무엇의 시작인가
~의 · 어떤 복음
~의 · 누구의 복음
낱말 끝을 보세요 — -ου가 반복됩니다. 한국어의 ‘~의’가 뒤에 붙듯, 헬라어는 낱말 끝을 바꿉니다.
⚠ 저본에는 υἱοῦ θεοῦ(하나님의 아들의)가 없습니다. 다수 사본에는 있어 상자가 두 겹 더 깊어집니다.
Ἰησοῦ Χριστοῦ‘예수 그리스도의 복음’ — 예수가 전한 복음인가, 예수에 관한 복음인가
아직 정하지 않은 자리입니다. 먼저 골라보세요.
εὐαγγέλιον‘복음’인가 ‘좋은 소식’인가
아직 정하지 않은 자리입니다. 먼저 골라보세요.
[υἱοῦ θεοῦ]저본에 없는 ‘하나님의 아들의’를 사역에 어떻게 다룰까
번역자는 이렇게 골랐습니다. 당신은 어떻게 읽습니까?
1:2액자 — 말 안에 말 인용 구조
검토 전 초안

예언자 이사야에 쓰여 있는 그대로 — “보라, 내가 내 심부름꾼을 네 얼굴 앞에 보낸다. 그가 네 길을 닦을 것이다.”

번역 노트 1 · 미결 1

ἐν τῷ Ἠσαΐᾳ τῷ προφήτῃ아직 정하지 않았다. ‘예언자 이사야에’라고 했는데 실제 인용은 말라기 3:1 + 출애굽 23:20 이 섞였다 예언자 이사야에 쓰여 있는 그대로 · 본문은 그대로, 각주로 출처를 밝힘

바깥은 마가가 말하고, 안쪽은 하나님이 말합니다. “내가”는 마가가 아닙니다.

마가가 말한다
하나님이 말한다
↳ 그 심부름꾼이 어떤 사람인가
헬라어 동사에는 ‘누가’가 이미 들어 있습니다. ἀποστέλλω의 끝 가 “내가”입니다.
⚠ 그래서 ἐγὼ는 없어도 됩니다 — 그리고 저본에는 실제로 없습니다. 다수 사본이 뒤에 넣은 것으로 봅니다.
ἐν τῷ Ἠσαΐᾳ τῷ προφήτῃ‘예언자 이사야에’라고 했는데 실제 인용은 말라기 3:1 + 출애굽 23:20 이 섞였다
아직 정하지 않은 자리입니다. 먼저 골라보세요.
1:3이름을 던지고, 명령 둘 인용 구조
검토 전 초안

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. “주의 길을 준비하라. 그의 길들을 곧게 만들어라.”

번역 노트 2 · 미결 1

φωνὴ βοῶντος ἐν τῇ ἐρήμῳ — “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” 를 골랐다. 마가가 칠십인역을 따랐고 1:4 에서 요한이 실제로 광야에 나타난다. 마가의 독법을 살린다.

κυρίου아직 정하지 않았다. ‘주의 길’ — 이 ‘주’는 누구인가 주의 길 · 야훼의 길

앞머리에 동사가 또 없습니다. “소리!”라고 툭 던집니다. 그리고 명령이 둘 나란히 오는데, 모양이 다릅니다.

누구의 소리인가
동사가 없습니다. 명사만 던져 놓습니다.
명령 하나 — 한 덩어리로
부정과거 명령 · 완료상. 일을 한 컷으로 봅니다.
명령 둘 — 계속 이어지는 일로
현재 명령 · 미완료상. 한국어로는 둘 다 그냥 명령입니다.
φωνὴ βοῶντος ἐν τῇ ἐρήμῳ‘광야에서’가 외치는 이에 붙나, 길을 준비하라에 붙나
번역자는 이렇게 골랐습니다. 당신은 어떻게 읽습니까?
κυρίου‘주의 길’ — 이 ‘주’는 누구인가
아직 정하지 않은 자리입니다. 먼저 골라보세요.
1:4광야에 사람이 나타나다 이야기 구조
검토 전 초안

광야에 요한이 나타났다. 세례를 주는 이로, 죄 용서에 이르는 돌이킴의 세례를 외치면서.

번역 노트 3

μετανοίας — “돌이킴의 세례” 를 골랐다.

εἰς ἄφεσιν ἁμαρτιῶν — “죄 용서에 이르는” 를 골랐다. 헬라어가 결정하지 않는 것을 한국어가 결정해버리지 않게 한다.

ὁ βαπτίζων — “세례를 주는 요한” 를 골랐다.

동사가 맨 앞에 옵니다. 주어보다 나타났다가 먼저입니다. 그리고 분사 둘이 요한에게 매달려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설명합니다.

누가 나타났다
동사가 주어보다 먼저 옵니다. 마가가 장면을 여는 방식입니다.
그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①
그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②
어떤 세례인가 — ‘~의’ 로 좁힌다
무엇을 향한 세례인가
분사 둘이 요한에게 매달립니다. 저본에는 둘 사이에 καί없습니다 — 외침이 세례에 종속됩니다.
μετανοίας‘회개’인가 ‘돌이킴’인가
번역자는 이렇게 골랐습니다. 당신은 어떻게 읽습니까?
εἰς ἄφεσιν ἁμαρτιῶνεἰς 가 목적인가 근거인가
번역자는 이렇게 골랐습니다. 당신은 어떻게 읽습니까?
ὁ βαπτίζων‘세례자 요한’으로 굳힐 것인가
번역자는 이렇게 골랐습니다. 당신은 어떻게 읽습니까?
1:5온 지방이 나가고 있었다 이야기 구조
검토 중

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 모두가 그에게로 나가고 있었다. 그리고 자기들의 죄를 드러내 말하며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고 있었다.

번역 노트 3

미완료를 ‘~고 있었다’로 살렸다. 한국어가 다소 늘어지지만 상이 이 도구의 핵심이라 번역에서 지우지 않는다. 부정과거는 반대로 한 컷으로 옮긴다.

ἐξεπορεύετο · ἐβαπτίζοντο — “늘 ‘~고 있었다’로” 를 골랐다. 상이 이 도구의 핵심이라 번역에서 지우지 않는다. 미완료는 ‘~고 있었다’로, 부정과거는 한 컷으로 옮긴다. 662절 전체에 걸리는 규칙이다.

ἐξομολογούμενοι — “자기 죄를 드러내 말하며” 를 골랐다.

동사 둘이 모두 미완료입니다. 한 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던 장면입니다.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습니다.

장면 ① — 나가고 있었다
누가 — 둘을 붙여 부풀린다
‘온’과 ‘모두’가 겹칩니다. 마가의 과장입니다.
장면 ② — 세례를 받고 있었다
그러면서 무엇을 했나
동사 둘이 모두 미완료입니다. 한 번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던 장면입니다.
ἐξεπορεύετο · ἐβαπτίζοντο미완료를 한국어에 드러낼 것인가 — 전체 규칙
번역자는 이렇게 골랐습니다. 당신은 어떻게 읽습니까?
ἐξομολογούμενοι중간태를 살릴 것인가
번역자는 이렇게 골랐습니다. 당신은 어떻게 읽습니까?
1:6차림새 — 상태로 찍은 사진 이야기 구조
검토 전 초안

요한은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른 채였다. 그리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고 있었다.

번역 노트 1

ταλιθα κουμ · εφφαθα · ελωι — 마가는 아람어를 그대로 적고 번역을 붙입니다. 누가·요한에는 없습니다. 번역을 붙였다는 것은 듣는 사람이 아람어를 몰랐다는 뜻입니다.

ἦν … ἐνδεδυμένος — 동사와 분사가 갈라져 하나로 작동합니다. 완료 분사라 상태상입니다. 옷을 입은 행위가 아니라 입고 있는 상태를 찍습니다.

상태 — 입고 있었다
무엇을 걸쳤나
상태상. 입는 행위가 아니라 입고 있는 상태를 찍습니다.
진행 — 먹고 있었다
무엇을 먹었나
미완료상. 같은 문장 안에서 상이 갈립니다.
1:7뒤에 오는 이 인용 구조
검토 전 초안

그리고 그는 외치며 말하고 있었다. “나보다 강한 이가 내 뒤에 오신다. 나는 몸을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다.”

번역 노트 1

ἔρχεται — “오신다” 를 골랐다.

요한의 말이 시작됩니다. ἐκήρυσσεν λέγων — 미완료 동사에 분사가 붙어 말을 엽니다. 그 안에서 현재형 ἔρχεται가 아직 오지 않은 이를 이미 오고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.

요한이 외친다
그 말 — 오고 있는 이
↳ 나는 그의 무엇도 못 한다
무엇을 못 하나
바깥은 요한이 말하고, 안쪽이 그 말입니다. ἔρχεται는 현재형인데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.
ἔρχεται현재형인데 아직 오지 않았다
번역자는 이렇게 골랐습니다. 당신은 어떻게 읽습니까?
1:8나와 그 — 물과 영 인용 구조
검토 중

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다. 그러나 그는 너희에게 거룩한 영 안에서 세례를 줄 것이다.

번역 노트 5

ὕδατι 를 ‘물로’, ἐν πνεύματι 를 ‘영 안에서’로 갈랐다. 저본에는 앞쪽 전치사가 없다. TR 은 ἐν ὕδατι로 맞춰 비대칭을 없앤다. 둘 다 ‘~로’로 옮기면 저본이 남긴 차이가 지워진다.

πνεύματι ἁγίῳ 에 관사가 없다. ‘성령’은 삼위일체 교리가 확정된 뒤의 번역어다. 마가 시점의 이 말은 ‘거룩한 숨·바람·영’이다. — 결정 필요

ἐγώ / αὐτός. 동사에 인칭이 이미 있으므로 대명사는 없어도 된다. 굳이 쓴 것이 대립의 표시라 한국어에서도 ‘나는’ ‘그는’을 살렸다.

ὕδατι ↔ ἐν πνεύματι — “물로 … 영 안에서” 를 골랐다. 저본 본문 안에 있는 차이다. 매끄럽게 만들면 TR 의 손질을 따라가는 셈이 된다.

πνεύματι ἁγίῳ — “거룩한 영” 를 골랐다. 관사가 없다. ‘성령’은 삼위일체 교리가 확정된 뒤의 번역어라 마가 시점으로는 소급이 된다. 여기서는 ‘거룩한 영’으로 둔다.

대명사 둘이 마주 섭니다 — ἐγώαὐτός. 헬라어는 동사에 인칭이 이미 있어서 대명사를 안 써도 됩니다. 굳이 썼다는 것이 대립의 표시입니다. 시제도 갈립니다 — 부정과거 대 미래.

나 — 물로, 이미
무엇으로
부정과거. 전치사 없이 맨 여격입니다.
그 — 영 안에서, 앞으로
무엇 안에서
미래. 이쪽에는 전치사가 있습니다. 이 비대칭이 저본 본문 안에 있습니다.
ὕδατι ↔ ἐν πνεύματι맨 여격과 전치사구의 비대칭을 살릴 것인가
번역자는 이렇게 골랐습니다. 당신은 어떻게 읽습니까?
πνεύματι ἁγίῳ‘성령’인가 ‘거룩한 영’인가
번역자는 이렇게 골랐습니다. 당신은 어떻게 읽습니까?
1:9예수가 처음 나타난다 이야기 구조
검토 전 초안

그 무렵에 예수가 갈릴리 나사렛에서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.

번역 노트 1

Ναζαρέθ 는 마가 전체에 이 한 번뿐입니다.

ἐγένετο 로 문장을 여는 것은 칠십인역 투입니다. 그런데 예수라는 이름이 문장 한가운데에 나옵니다 — 이 복음에서 처음 등장하는 자리인데도요. 그리고 곧바로 ἐβαπτίσθη, 수동태입니다. 받는 쪽입니다.

그 무렵에
칠십인역 투. 시간을 먼저 깔고 사람을 들입니다.
예수가 왔다
이 복음에서 예수의 이름이 처음 나오는 자리입니다. 주어가 동사 뒤에 옵니다.
세례를 받았다
수동태. 예수가 하는 일이 아니라 받는 일입니다.
1:10하늘이 찢어진다 이야기 구조
검토 전 초안

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자마자 그는 하늘이 찢어지는 것과 영이 비둘기처럼 자기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.

번역 노트 2

σχίζω 는 마가에 1:10 · 15:38 두 번뿐입니다. 세례에서 하늘이 찢어지고 십자가에서 휘장이 찢어집니다. 마태·누가는 여기서 '열렸다'를 씁니다.

갈림길 후보σχιζομένους 는 현재 수동 분사라 '찢어진'이 아니라 '찢어지고 있는'입니다. 사역에서 진행을 살릴지 결정할 것.

분사 셋이 전부 현재분사입니다 — ἀναβαίνων · σχιζομένους · καταβαῖνον. 미완료상이라 셋 다 벌어지는 중입니다. 완료상은 εἶδεν 하나뿐입니다. 한 번 본 장면 안에서 세 가지가 계속 움직입니다.

물에서 올라오면서
εὐθύς — 마가의 속도 표지입니다. 시간 부사보다 서사 속도에 가깝습니다.
하늘이 찢어지는 것을
σχίζω 는 마가 전체에 두 번뿐입니다 — 여기와 15:38 성소 휘장. 시작과 끝이 같은 낱말로 묶입니다.
영이 내려오는 것을
ὡς περιστεράν — 비둘기가 아니라 비둘기처럼입니다. 무엇을 닮았는지는 열려 있습니다.
1:11너는 내 아들이다 인용 구조
검토 전 초안

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났다. “너는 내 아들, 내가 사랑하는 자다. 내가 너를 기뻐했다.”

번역 노트 3

ἀγαπητός 는 마가에 세 번 나옵니다 — 1:11 · 9:7(변화산) · 12:6(포도원 비유의 아들). 세 자리 모두 아들을 가리킵니다.

εὐδοκέω 는 마가에 여기 한 번뿐입니다.

갈림길 후보 둘 — ① ἀγαπητός 를 '사랑하는'으로 옮길지 '하나뿐인'으로 옮길지. 칠십인역 창세기 22 장에서 이삭에게 붙는 말입니다. ② εὐδόκησα 가 부정과거인데 한국어로 '기뻐했다'인지 '기뻐한다'인지. 완료상은 시간이 아니라 보는 방식입니다.

2인칭입니다σὺ εἶ. 마태는 같은 장면을 3인칭 '이는 내 아들이다'로 적습니다. 여기서는 예수에게 하는 말입니다. 게다가 σύ 를 굳이 씁니다 — 동사에 이미 인칭이 있는데도요. 헬라어에서 대명사를 따로 쓰면 강조입니다.

소리가 났다
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적지 않습니다. 소리가 주어입니다.
너는 내 아들이다
2인칭. 마태는 3인칭입니다. 누가 듣는 말인가가 갈립니다.
내가 너를 기뻐했다
부정과거. 완료상이라 한 덩어리로 본 사건입니다.
세 절, 세 가지 뼈대
1:1속격 사슬동사 없음 · ‘~의’ 네 번 · 안으로 좁혀 들어감
1:2액자마가의 말 안에 하나님의 말 · 관계절이 하나 매달림
1:3명사구 + 평행 명령동사 없음 · 명령 둘이 나란히, 상이 다름
듣기 · 내려받기

헬라어 낭독은 누구나 들을 수 있습니다. 원문이 열린 자료이기 때문입니다. 한국어 사역 낭독은 직접 옮긴 것이라 멤버십에서 열립니다.

지금 보고 있는 단락
마가복음 1:1–3 · 헬라어무료
3절 · 약 40초
↓ 받기
묶음
마가복음 1장 · 헬라어무료
45절 · 약 7분 · 5MB
↓ 받기
마가복음 전체 · 헬라어무료
16장 · 663절 · 약 110분 · 16개 파일
마가복음 전체 · 한국어 사역멤버십
16장 · 약 95분
팟캐스트로 듣기 — 걸어다니며 듣고 싶으면 구독하세요. 한 장이 한 편입니다. RSS · Spotify · Apple Podcasts